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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뮤지컬 〈일 테노레〉 리뷰 뮤지컬 〈일 테노레〉, 무너진 시대 위에 울려 퍼진 목소리그날, 나는 목소리에 이끌려 극장에 들어섰다그날따라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우연히 마주친 ‘창작 뮤지컬’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아무 기대 없이 들어선 극장에서, 뜻밖의 떨림을 마주했다. 무대가 어둠 속에서 열리고, 첫 테너의 목소리가 공간을 가르며 퍼질 때, 나는 이미 이 작품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이야기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 시대 속에서, 이인선이라는 인물을 따라간다. 그는 실존했던 인물이자 한국 최초의 오페라 테너. 작품은 그를 무대 위의 전설로서가 아니라, 시대를 살아간 한 사람으로 그려낸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진심 어린 울림, 특별한 연출보다는 사람에 집중한 이야기. 그래서일까, 관객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무.. 더보기
〈오페라의 유령〉과 〈팬텀〉, 두 얼굴의 슬픔을 마주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팬텀〉, 두 얼굴의 슬픔을 마주보다— 같은 인물,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던 그 이야기나는 유령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사람이었다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을까.내가 이토록 사랑을 갈망하는 게 죄가 된다면,그 누구도 내게 손을 내밀지 말았어야 했어.그녀마저도.뮤지컬 〈팬텀〉에서 나는 버려진 존재였다. 태어난 순간부터.사랑을 받기엔 너무 흉측했고, 세상은 내 재능을 감탄하면서도 내 얼굴은 끝내 외면했다.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벽 틈을 떠돌며, 내가 음악으로 지어낸 유일한 세상은 오직 '크리스틴'이라는 이름 하나로 유지되고 있었다.그녀는 내 유일한 빛이자, 내 유일한 이유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내 악보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내 숨결 하나하나가 그녀의 음율에 스며 있었다.나는 그저, 음악으.. 더보기
뮤지컬 데스노트 – 사신은 알고 있다, 이 게임의 끝을 인간은 언제나 심판을 꿈꾼다나는 류크, 사신계에선 지겹도록 오래 산 존재다.수천, 수만의 인간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죽어가는 걸 보며, 이젠 죽음조차 지루하게 느껴지던 시기였다.그래서 그냥, 심심풀이 삼아 데스노트를 하나 떨어뜨렸다.정확히 말하면, 호기심이었다.이 하찮은 인간 세계에 노트를 하나 던져보면, 과연 뭘 어쩌겠나 싶어서.그리고 그는 나타났다. 야가미 라이토.처음엔 그저 똑똑하고 잘생긴 고등학생쯤으로 보였다.그런데 그의 눈은 달랐다.그 안엔 세상에 대한 확신, 아니면 망상이 자리하고 있었다."이 썩은 세상을 내가 바로잡겠다."그가 처음 그 말을 꺼냈을 때, 나는 속으로 웃었다.누구나 그렇게 말은 하지.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살지 못해.그런데 이 녀석은… 곧장 사람을 죽였다. 아무 망설임도 없.. 더보기
뮤지컬〈드라큘라〉 – 그 밤이 지나고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어쩌면, 모든 건 그 밤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사람들이 내게 물었다.“그 후로는 괜찮으셨어요?”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괜찮다고, 이제는 다 지나갔다고.아이를 안고 조나단과 함께 걷는 이 평온한 일상이 나를 감싸고 있긴 하니까.그런데,그건 절반쯤만 진실이다.조용한 밤이면 그날이 떠오른다.피 냄새와 바람 소리, 그리고 그의 목소리.그가 내 이름을 부르던 순간,나는 지금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잊을 뻔했다.그와 처음 마주쳤던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그건 두려움이나 충격보다 훨씬 더 강한 감정이었다.뭔가 오래전부터 나를 지켜본 사람처럼,낯설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눈빛이었다.그가 입을 열자마자 내 이름을 불렀다.“미나.”그 한마디가 모든 걸 바꿨다.이야기에서만 존재하던 존재가 현실이 되었고,그 현.. 더보기
뮤지컬 〈베르테르〉, 사랑이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 뮤지컬 〈베르테르〉, 사랑이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1. 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그날, 나는 단지 시 한 편을 완성하고 싶어서, 혹은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찾고 싶어서 그 마을에 갔던 거였어. 그런데 그곳에 그녀가 있었지. 롯데. 이름 하나만으로도 온 세상이 조용해지는 듯한 여자. 그녀는 아이들과 웃고 있었고, 그 웃음은 내가 알던 세상의 어떤 음악보다 따뜻했어.나는 그 순간, 이미 빠져버린 거야. 어쩌면 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갑작스러웠고, 또 너무 순수했지. 그저 ‘좋다’는 감정으로 시작된 마음은 곧 ‘그녀 없이는 숨 쉴 수 없다’는 절실함으로 커져갔어. 그건 내가 원해서 선택한 감정이 아니었어. 마치 비가 내리면 땅이 젖듯, 그녀가 내게 미소 지었기에 나는 사랑에 빠졌던 거야.2. 그녀는.. 더보기
〈레베카〉 속 나의 시선, 댄버스 부인을 바라보며 1. 이름 없는 나, 그녀의 그림자 앞에서그의 손을 잡고 처음 맨덜리에 들어섰을 때, 나는 내 이름을 잃었다. 누구도 나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고, 나조차 나를 부르지 못했다. 벽지에서 나는 오래된 장미 향, 카펫을 밟을 때마다 울리는 먼지 섞인 숨결, 그리고 어딘가 날카롭고도 차가운 시선. 그 모든 것이 나를 조용히, 그러나 천천히 짓눌렀다.그 중심엔 그녀가 있었다. 댄버스 부인. 그 눈빛은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하고 있었고, 그 목소리는 나에게 닿지 않았다. 그녀는 맨덜리의 주인이 아니었지만, 분명 주인보다 더 깊이 이 집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는 레베카를 숭배했고, 나는 그 숭배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나는 누구지?’ ‘왜 나는 여기에 있는 거지?’ 끊임없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울렸고, 대답 없는 .. 더보기
〈명성황후〉, 무대 위에서 다시 숨 쉰 황후의 시간 무대 위, 황후의 숨결이 되다– 배우 신영숙, 2025년 세종문화회관 〈명성황후〉를 마치고1. 다시 시작된 이름, ‘명성황후’2025년 1월, 다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섰다. 30주년 기념 시즌의 첫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 작품은 내게 처음부터 특별했다. 1999년, 조연 ‘손탁’ 역으로 데뷔했던 무대, 그 무대 위에서 다시 ‘명성황후’로 서 있는 지금, 그것은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한 사람의 배우 인생을 돌이켜보는 순간이기도 했다.막이 오르기 전, 늘 그랬듯 무대 뒤 조용한 공간에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오늘도 당신을 살아내겠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단지 배역이 아니었다. 하나의 생명이었고, 하나의 시대로서 존재했다.2. 황후라는 옷을 입는다는 것의상실에서 명성황후의 옷을.. 더보기
뮤지컬 〈영웅〉, 내가 정성화였다면 뮤지컬 〈영웅〉, 내가 정성화였다면무대가 어두워지고, 조명이 천천히 발밑을 비출 때마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내가 정성화였다면, 그 무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역사 속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려 말을 전하는 자리. 대본을 처음 펼쳤을 때부터 무거운 책임감 같은 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그 시대를 몸에 품고 살았을 테니까.하지만 막상 무대에 발을 딛는 순간,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을 것 같다. 긴장된 공기 속에서도 따뜻한 무언가가 있었을 테고, 조명이 뜨겁게 등을 밀어줄 때마다 그는 안중근이라는 사람에게 조금 더 가까워졌을지도. 그 순간만큼은 연기자라기보단,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으로 서 있었겠지.1. 영웅이라는 이름을 입는다는 것‘안중근’이라는 세 글자. 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