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베르테르〉, 사랑이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
1. 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
그날, 나는 단지 시 한 편을 완성하고 싶어서, 혹은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찾고 싶어서 그 마을에 갔던 거였어. 그런데 그곳에 그녀가 있었지. 롯데. 이름 하나만으로도 온 세상이 조용해지는 듯한 여자. 그녀는 아이들과 웃고 있었고, 그 웃음은 내가 알던 세상의 어떤 음악보다 따뜻했어.
나는 그 순간, 이미 빠져버린 거야. 어쩌면 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갑작스러웠고, 또 너무 순수했지. 그저 ‘좋다’는 감정으로 시작된 마음은 곧 ‘그녀 없이는 숨 쉴 수 없다’는 절실함으로 커져갔어. 그건 내가 원해서 선택한 감정이 아니었어. 마치 비가 내리면 땅이 젖듯, 그녀가 내게 미소 지었기에 나는 사랑에 빠졌던 거야.
2. 그녀는 나의 전부였고, 나는 그녀의 일부도 아니었다
그녀는 참 따뜻했어. 나를 피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았어. 내 말에 웃어주었고, 때로는 시를 같이 읽어주기도 했지. 그 모든 순간들이 내겐 축복이었어. 하지만 그녀는 늘 말했지. "나는 알베르트를 사랑해요."라고. 처음엔 그 말이 마음을 스쳐 지나갔어. 나는 그냥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니까’라는 마음으로 버텼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나를 찔렀어. 내가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곁에 있어도, 그녀는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그 진실이. 그녀는 나의 전부였는데, 나는 그녀의 일부조차 아니었다는 걸. 그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웠고, 그럴수록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은 더 아프게 벼려졌어.
나는 미소 지었고, 편지를 썼고, 시를 썼지. 그녀에게 닿을 수 없는 마음을 말로라도 전하고 싶어서. 하지만 그녀는 그 편지들을 예쁘다고만 했지, 한 번도 ‘나도 그래요’라고는 말하지 않았어.
그녀는 항상 현실을 선택했고, 나는 항상 감정을 선택했지. 그 차이가 우리를 갈라놓았고, 결국 나는 혼자서 그 사랑을 감당해야 했어.
3.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은 고통이 되었다
사랑은 처음엔 꽃 같았어. 향기로웠고, 가슴 뛰었고, 살고 싶게 만들었지. 하지만 점점 그것은 가시가 되었고, 결국엔 비수가 되었어. 그녀를 보면 기뻤지만, 그녀가 떠나면 숨이 막혔어. 그녀가 웃으면 설렜지만, 그 웃음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란 걸 알면 아팠어.
그녀는 내게 사랑을 주지도, 빼앗지도 않았어. 그게 오히려 더 잔인했지. 나는 언제나 ‘혹시’라는 기대 속에 살았고, 그 기대는 번번이 부서졌어.
내가 죽고 싶은 이유는 단지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야. 내가 아무리 사랑해도 바뀌지 않는 이 세상의 무게 때문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바라보는 것뿐이고, 그마저도 점점 그녀에겐 짐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사랑은 나를 살게도 했지만, 결국 나를 죽게도 만들었어.
4. 마지막 날, 나는 다시 편지를 썼다
나는 오늘 아침 다시 펜을 들었어. 당신을 위한 마지막 편지를 쓰기 위해. 아무도 없는 방에서,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사랑했어요, 롯데. 그 어떤 말보다 이 말이 나의 전부예요. 당신을 만나고, 사랑하고, 외면당하고, 다시 사랑했던 모든 순간들이 나를 만들어왔어요. 당신 덕분에 나는 진심으로 웃었고, 진심으로 울었어요. 그리고 지금, 진심으로 떠나고 싶어요.
당신을 탓하지 않아요. 당신은 언제나 솔직했고, 착했고, 예뻤어요. 나만이 바보 같았던 거죠. 내 마음만 앞질러 갔던 거죠. 하지만 그 사랑을 후회하진 않아요. 그건 내가 처음으로 진심이었던 순간들이었으니까요.
나는 이제 글을 멈추려 해요. 총도 준비됐어요. 겁이 나지 않아요. 왜냐하면 당신을 사랑한 이 삶은, 이쯤에서 충분하니까요.
5. 당신을 사랑한 내가, 나였어요
이건 비극일 수도 있고, 또 하나의 시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단 한 가지는 분명해요. 나는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 사랑이 나를 나답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당신이 웃을 때 나는 살아 있었고, 당신이 떠날 때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어요. 누구도 내 사랑을 몰랐고, 이해하지 않았고, 받아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 사랑 안에서 진짜 나를 찾았어요.
세상은 나를 오해할지도 몰라요. ‘어리석다’, ‘비겁하다’고 말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당신을 미워한 적이 없어요. 그건 사랑이 아니니까요. 사랑은, 나를 버리더라도 당신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니까요.
이제, 잘 있어요.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나는 떠나요.
당신을 사랑한 내가, 나였다는 걸 잊지 말아요.
– 베르테르로부터
'뮤지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뮤지컬 데스노트 – 사신은 알고 있다, 이 게임의 끝을 (0) | 2025.06.21 |
---|---|
뮤지컬〈드라큘라〉 – 그 밤이 지나고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3) | 2025.06.21 |
〈레베카〉 속 나의 시선, 댄버스 부인을 바라보며 (0) | 2025.06.20 |
〈명성황후〉, 무대 위에서 다시 숨 쉰 황후의 시간 (1) | 2025.06.20 |
뮤지컬 〈영웅〉, 내가 정성화였다면 (2) | 2025.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