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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뮤지컬〈드라큘라〉 – 그 밤이 지나고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뮤지컬 드라큘라 이미지

어쩌면, 모든 건 그 밤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그 후로는 괜찮으셨어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다고, 이제는 다 지나갔다고.
아이를 안고 조나단과 함께 걷는 이 평온한 일상이 나를 감싸고 있긴 하니까.

그런데,
그건 절반쯤만 진실이다.
조용한 밤이면 그날이 떠오른다.
피 냄새와 바람 소리, 그리고 그의 목소리.
그가 내 이름을 부르던 순간,
나는 지금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잊을 뻔했다.

그와 처음 마주쳤던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건 두려움이나 충격보다 훨씬 더 강한 감정이었다.
뭔가 오래전부터 나를 지켜본 사람처럼,
낯설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눈빛이었다.
그가 입을 열자마자 내 이름을 불렀다.
“미나.”
그 한마디가 모든 걸 바꿨다.

이야기에서만 존재하던 존재가 현실이 되었고,
그 현실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하고,
아름답고, 위험했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드라큘라는 내게 다가올 때,
처음부터 뭔가를 빼앗으려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조용했고, 느렸고, 한 걸음씩 나를 둘러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그 안에 있었다.

그는 항상 내게 말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버릴 수 있어."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왜냐하면 그의 눈엔 슬픔이 가득했으니까.
살아 있는 것을 원했지만,
자신이 더는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없다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러빙 유 킵스 미 얼라이브〉
그 노래가 내 귀에 울릴 때,
나는 그를 더는 괴물이라 부를 수 없었다.
살고 싶어서, 사랑하고 싶어서
수백 년을 버텨온 한 사람.
그렇게만 보였다.

그의 손이 내 손에 닿았을 때,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처음엔 차가웠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따뜻했다.
피가 없는 존재인데도…
그의 체온은 기억되고 있다.

나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그 품에 안기고 싶었다.
말도 안 되게 끌렸다.
이성이 아닌,
감정의 끝에서.

그가 나를 사랑했던 건,
확실히 안다.
그 사랑이 내게 어떤 선택을 요구했는지도 안다.
하지만 그가 나를 괴롭히려 했다면,
그는 마지막까지 그렇게 울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떠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를 느낀다

그 밤,
모두가 그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때,
그는 내 앞에 와서 칼을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이 해줘야 해. 그래야 내가 끝날 수 있어."
그건 명령도 아니었고 부탁도 아니었다.
그는 이미 선택한 사람이었고,
나는 그의 마지막을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프레이어〉
그가 불렀던 마지막 노래는 내게 남겨진 기도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죄를 씻으려는 노래가 아니라,
나를 위한, 내 슬픔을 위한 노래.
그 노래는 지금도 귀에 남아 있다.
밤이면 문득 그 멜로디가 귓가를 스친다.

그를 안고 있을 때,
나는 울었다.
다른 사람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며 우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랑이, 나를 남겨두고 떠나는 걸 느끼며 울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고요하게, 사라졌다.

그의 온기가 아직도 내 손에 남아 있다.
그건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종류의 기억이다.
내가 잊고 싶다고 해서 잊히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날까지 같이 가야 할, 그런 무게 같은 거다.

나는 살아남았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그 이후로 일상을 회복했다고 믿는다.
조나단은 내게 아무 말도 묻지 않는다.
그는 내가 상처받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어떤 상처인지는 모른다.
그가 모르는 게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아 말하지 않는다.

아이를 안고 웃으며 걷는다.
때로는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러다 문득,
그 밤이 떠오른다.
그의 손, 그의 눈빛,
그가 속삭였던 마지막 말.

〈더 유어스〉
그가 남긴 말이다.
"나는 당신의 것이야."
그리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매일 조금씩 다시 되새긴다.

나는 조나단의 아내고, 아이의 엄마다.
하지만 동시에,
한 존재의 마지막 기억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죽었다.
그러나 내 안에서는 아직도 숨 쉬고 있다.
그의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르던 그 낮은 음성이,
지금도 가끔, 아주 가끔 들린다.

내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나는,
그를 사랑했던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