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하데스타운〉, 지하로 향하는 그 길 위에서
운명의 서곡이 울려 퍼질 때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대 위에 자리한 라이브 밴드가 눈에 들어왔다. 무대 구석을 차지한 악기들, 연주자들이 들썩이며 튜닝하는 그 장면조차 하나의 연출처럼 보였다. 여느 공연과는 달랐다. 막이 오르기 전부터 이미 이 세계는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헤르메스가 등장하고, 첫 넘버인 'Road to Hell'이 흐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마음의 중심을 완전히 내어줬다.
이 작품은 '송 스루 뮤지컬'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사가 없다. 모든 이야기는 노래로 흘러간다. 그런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사보다 더 솔직했고, 더 깊었으며, 더 마음을 울렸다. 특히 헤르메스 역을 맡은 최정원 배우의 존재감은 단단하고도 따뜻했다. 그는 관객과 무대를 잇는 다리였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숨이었다.
그가 무대 곳곳을 누비며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모습은, 단순한 해설자가 아니라 운명을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이끌어야만 하는 운명의 관리자처럼 보였다. 관객에게 무언가를 전하는 동시에, 극 안의 인물들에게도 길을 제시하는 존재. 그런 역할을 단단하게 지켜낸 그의 연기가 공연의 서사를 훨씬 깊이 있게 만들었다.
사랑은 왜 늘 늦게 도착할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 고전적인 이름들이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날 때, 단순한 신화로 다가오지 않았다. 현실의 언저리 어딘가에 존재했을 법한 두 청춘처럼 느껴졌다. 김민석 배우의 오르페우스는 섬세했다. 그의 목소리는 높은 음을 뚫고 올라가면서도 부서질 듯 여렸다. 특히 'Wait for Me'를 부를 때, 그의 음색은 객석 전체를 가로질렀다. 그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정말 하데스의 지하 세계 어디쯤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연기는 '순수' 그 자체였다. 세상을 노래로 구할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함이 아니라, 그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의 용기였다. 그 믿음이 오히려 너무 투명해서, 세상의 바람에 쉽게 부서질 것 같았다. 관객으로서 나는 그 투명함이 안쓰럽고도 아름다웠다.
김환희 배우의 에우리디케는 강했다. 외롭고 지쳐 있었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을 받아들이는 눈빛이 또렷했다. 삶과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 눈빛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대 끝에서 오르페우스를 바라보던 마지막 장면에서는, 말보다 더 많은 감정을 전했다. 관객석 이곳저곳에서 조용한 훌쩍임이 들렸고, 나 역시 손을 가슴 위에 올려야만 했다. 감정을 다잡기 위해.
지하의 왕, 사랑을 시험하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이 부부의 대립과 화해는 이 작품의 또 다른 축이다. 김우형 배우의 하데스는 차갑고 절제된 폭력이었다. 그의 저음은 무대를 진동시켰고, 단 한마디로도 사람을 굴복시킬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었다. 그런 목소리로 부르는 'Hey, Little Songbird'는 위협이면서도 유혹이었고, 어떤 절망이기도 했다.
반면 김선영 배우의 페르세포네는 생명력이 넘쳤다. 억압된 삶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그녀의 노래는, 관객에게 숨 쉴 틈을 주는 한 줄기 햇살 같았다. 그녀가 'Our Lady of the Underground'를 부를 때, 그 무대는 단숨에 색이 변했다. 회색의 지하가 잠시나마 따뜻한 색으로 물들었고,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자유로웠다.
이 두 인물의 관계는 단순한 부부 갈등이 아니다. 권력과 자유, 질서와 혼돈 사이에서의 싸움이다. 그 사이에 있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하데스타운을 더욱 절절하게 만든다. 모든 캐릭터들이 자신의 욕망과 한계 사이에서 흔들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균열들이 음악으로 터져 나온다. 그것이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이었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이야기
마지막 장면. 오르페우스는 결국 에우리디케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오지 못한다. 너무 일찍 돌아본 그의 사랑은, 그렇게 또 한 번 실패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르메스는 말한다. \"이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왜냐하면 우리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시 사랑하고 다시 믿기 위해 극장에 오기 때문이라고.
공연이 끝나고도 한참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객석엔 묘한 침묵이 흘렀고, 그 조용한 숨결 속에서 각자의 감정이 천천히 정리되고 있었다. 박수는 그 다음이었다. 커튼콜에서 배우들이 다시 무대 위에 섰을 때, 감동은 되살아났고 관객들은 마침내 마음껏 환호했다. 하지만 그건 단지 찬사가 아니었다. 그건 사랑을 실패한 모든 존재에게 보내는 위로였고, 다시 시작될 이야기에 대한 약속이었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이 작품은 단순히 고전 신화를 무대 위로 옮긴 것이 아니다.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지하로 내려가고, 누군가는 그를 따라가고,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 극장에 또다시 발을 들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사랑하고 있고, 누군가는 의심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너무 일찍 돌아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계속된다. 다시 시작되는 노래처럼. 다시 울려 퍼지는 그 운명의 서곡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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