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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뮤지컬 〈일 테노레〉 리뷰

뮤지컬 일 테노레 포스터 이미지

뮤지컬 〈일 테노레〉, 무너진 시대 위에 울려 퍼진 목소리

그날, 나는 목소리에 이끌려 극장에 들어섰다

그날따라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우연히 마주친 ‘창작 뮤지컬’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아무 기대 없이 들어선 극장에서, 뜻밖의 떨림을 마주했다. 무대가 어둠 속에서 열리고, 첫 테너의 목소리가 공간을 가르며 퍼질 때, 나는 이미 이 작품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 시대 속에서, 이인선이라는 인물을 따라간다. 그는 실존했던 인물이자 한국 최초의 오페라 테너. 작품은 그를 무대 위의 전설로서가 아니라, 시대를 살아간 한 사람으로 그려낸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진심 어린 울림, 특별한 연출보다는 사람에 집중한 이야기. 그래서일까, 관객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무대로 빨려들었다.

그가 처음 노래를 부르던 장면. 아무 장식 없는 조명 아래 서서, 조용히 첫 소절을 부르는 모습은 무언의 울림이었다.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증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장면은 꽤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렀다.

시대의 아픔을 울림으로 바꿔낸 무대

이 작품은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감정이 흘러나오는 작품이다. 시대극이지만 무겁지 않고, 예술극이지만 거리감이 없다.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이인선은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단단하게, 더 조용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키워간다.

특히 기억에 남는 넘버 ‘그 밤의 약속’. 한 줄 한 줄 부를 때마다, 객석 여기저기서 숨죽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관객들은 조용히 울고 있었고, 나는 숨을 쉬는 것조차 미안해질 만큼 몰입했다. 그 노래는 단지 테너의 감정을 담은 것이 아니었다. 한 시대의 상처, 누군가의 희망, 그리고 말할 수 없던 모든 고백들이 그 안에 있었다.

무대는 많은 걸 보여주지 않았다. 굳이 보여주려 하지도 않았다. 무심한 듯 조명이 꺼졌다가 켜지고, 배우들이 퇴장하고 등장하는 사이에 무언가가 축적됐다. 마음이 자꾸 따라가게 되는 연출. 오히려 그래서 더 뭉클했다. 말보다 멜로디가, 움직임보다 정적이 더 큰 울림을 주는 순간들이 있었다.

테너의 목소리는 곧, 이 시대의 관객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시절을 살아내고 있었다. 노래는 기술이 아니라 삶처럼 느껴졌다. 주연 배우의 마지막 장면,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노래를 마무리하던 순간은, 지금도 또렷하다. 누군가의 연기가 아니라, 정말 한 사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배우들의 호흡, 조명의 호흡, 음악의 흐름. 이 모든 것이 정교하게 맞물려 한 편의 흐름을 만들었다. 특히 음악은 이 작품의 중심이자 날줄이었다. 클래식 오페라 스타일의 멜로디가 우리말 가사와 어우러질 때 느껴지는 이질감 없는 울림. ‘노래가 시대를 견딜 수 있다면, 사람도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은 쉽사리 불이 켜지지 않았다. 관객들은 일어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마음 깊이 받아들였을 때 오는 그 조용한 침묵. 어떤 박수보다 더 큰 찬사였을 것이다.

창작 뮤지컬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저했다면, 이제는 망설이지 말기를

〈일 테노레〉는 무대의 화려함보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창작 뮤지컬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망설였던 관객도, 이 공연을 보고 나면 그 생각이 바뀌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지킨 사람. 그것이 시대를 바꾸지 못했을지라도, 누군가의 삶에는 큰 울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단순한 ‘전기 뮤지컬’이 아닌 살아 있는 감정으로 전한 이 작품은 오래 기억될 수밖에 없다.

공연이 끝나고도 한동안 앉아 있었다. 마음이 쉽게 떠나지 않았다. 그 목소리, 그 눈빛, 그 장면들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날의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들어섰다가 마음을 채우고 돌아가는 관객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뮤지컬 〈일 테노레〉는 노래로 시대를 증언하고, 사람으로 마음을 건넨다.
조용하지만 강하게, 가만히 그러나 깊게. 그리고 나는,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으로서 오래도록 잊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