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미제라블〉, 자베르의 시선으로 본 정의와 흔들림
나는 법의 사람이었다
법은 질서였고, 질서는 곧 신의 뜻이었다. 나는 그 원칙을 믿었다. 혼돈 속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누군가는 법을 수호해야 했고, 나는 그 역할을 자처했다. 내 이름은 자베르. 나는 내가 맡은 자리에서, 내가 믿는 정의를 위해 단 한순간도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장발장을 마주하고부터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은 죄인의 것이 아니었고, 그의 삶은 단죄받기보단 이해되어야 할 무엇이었다.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는 순간, 내가 믿어온 모든 것이 무너질 테니까. 나는 나 자신을 붙들기 위해 법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단호함은 내 유일한 무기였고, 그 무기는 나를 스스로 가두는 굴레가 되어갔다.
\"Stars\" 아래에서 나는 기도했다
어둠 속에서 부르는 나의 노래, 'Stars'. 그것은 나 자신을 향한 다짐이었고,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붙잡기 위해, 나는 별을 올려다보았다. 별은 변하지 않으니까. 세상은 혼란스러워도, 법과 정의는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었다. 내가 믿는 것은 그 별들처럼 절대적인 무엇이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노래를 부를 때, 배우의 눈빛이 나를 똑바로 꿰뚫었다. 무너지고 있다는 걸 자각하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 무대 위에 서 있었다. 그것은 단지 역할이 아니었다. 자베르라는 인간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조명이 꺼지는 그 짧은 찰나, 관객석조차 숨을 삼키고 있었다. 나도 그 무게를 함께 느끼며, 정의의 이름 아래 가려졌던 인간 자베르를 처음으로 마주했다.
장발장,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이름
장발장은 죄인이었다. 빵 하나를 훔친 대가로 19년을 감옥에서 보냈고, 그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나는 믿었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자신을 버리며 살아가는 사람. 나는 그의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믿는 정의의 틀을 넘어서는 일이었으니까. 용서는 감정의 영역이라 생각했고, 감정은 판단을 흐린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삶은, 내가 믿는 정의보다 더 강력했다. 그는 나를 살려주었고, 나를 체포할 수 있었음에도 보내주었다. 내가 법을 쥐고 있었지만, 진정한 선택은 그가 하고 있었다. 그를 다시 마주했을 때, 나는 갈등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를 체포할 수 있었지만 놓아줬을 때, 나는 이미 자베르로서의 삶을 끝낸 것이었다. 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잃었다. 그 깨달음은 구원이 아니라 붕괴였다.
마지막, 스스로에게 내린 판결
나는 내 안에서 끝없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믿었던 정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법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사람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나의 신념은 무자비했고, 나의 원칙은 냉정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달라질 수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내가 내린 선택은, 자베르라는 사람에게 내려진 판결이었다. 스스로를 단죄한 것이다. 무대 위 자베르가 다리 위에서 부르던 마지막 노래는 단지 죽음을 택한 한 사람이 아닌, 자기 확신이 무너진 인간의 고백이었다. 관객이 숨죽인 채 바라보던 그 장면은, 비극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조용한 절규였다. 누군가의 박수도, 환호도 없이 그저 조용히 사라지는 인물. 그 순간에야 나는 진짜 자베르를 이해한 것 같았다.
끝나지 않는 질문
〈레미제라블〉은 영웅의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 작품은, 자베르라는 사람의 내면을 끝없이 파헤치게 만든 시간이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공연 내내 가슴에 품게 했다. 무대는 끝났지만, 그 질문은 아직도 내 안에서 반복된다. 자베르가 던진 마지막 말 없는 고백이, 아직도 머릿속을 맴돈다.
조명 아래 서 있는 배우의 모습보다, 그 그림자가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자베르의 길은 끝났지만, 그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내 안에서 반복된다. 어쩌면 이 작품의 진짜 힘은, 무대를 벗어난 뒤에도 생각이 멈추지 않는 데 있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묻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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