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 나는 과학자였고, 엄마였고, 무엇보다 사람이었다
1. 빛은 언제나 옳았을까
사람들은 나를 과학자라 불렀다. 라듐을 발견한 여성, 두 번의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존재, 시대를 바꾼 인물. 그 말들이 틀린 건 아니지만, 정작 나는 그런 타이틀보다 '마리'라는 이름이 먼저 불리기를 바랐다. 내 삶의 시작은 단순했다.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밝히고 싶었다. 실험실 한쪽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가능성을 좇으며, 나는 점점 더 깊이 과학이라는 세계에 빠져들었다. 라듐, 그 찬란한 빛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세상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암 환자에게 희망이 되고, 인류에게 빛이 되는 물질일 거라 믿었던 것이다. 내가 바라본 라듐의 빛은, 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비출 거라 생각했다. 그게 내가 붙잡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빛은 정말 옳았던 걸까?
때로는 가장 밝은 빛이 가장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는 믿었다. 과학은 진실을 향한 길이고, 그 끝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 믿음이 절대적인 것이었는지, 아니면 나 스스로 만든 환상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빛은 방향을 잃으면 흉기가 되기도 하니까.
2. 빛의 그늘에서, 나는 나를 의심했다
라듐이 세상에 가져온 변화는 분명했다. 병원에서 환자들이 치료받고, 공장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이 환히 웃으며 일을 했다. 나는 내가 발견한 것이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손끝이 허물어지고, 턱뼈가 무너지고, 젊은 이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갔다. 나는 믿고 싶지 않았다. 이 고통이 내 과학의 결과라는 것을. 하지만 외면할 수 없었다. 라듐은 누군가에게는 치료제였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독이었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과학은 어느새 누군가를 해치는 칼날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내 연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빛을 좇은 게 정말 세상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을까. 나는 점점 나 자신이 두려워졌다. 내 손으로 만든 빛이 누군가의 생명을 갉아먹었다는 사실은, 과학자로서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당시 나는 스스로를 변명하고 싶었다. 누구도 몰랐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고. 그러나 과학자의 책임은 결과 앞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손끝에서 시작된 일이기에, 그 무게를 끝까지 감당해야 한다고 나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3. 나는 과학자였지만, 그보다 먼저 엄마였다
사람들은 나를 과학자로 기억한다. 그러나 내 안에는 언제나 엄마로서의 나도 함께 있었다. 이렌과 에브, 두 아이는 내 삶의 가장 깊은 곳에 있었다. 나는 실험실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세계를 바꾸려 했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들의 웃음과 눈빛은 내 하루를 살아가게 해주는 유일한 힘이었다. 아이들이 잠든 얼굴을 보며, 나는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시 다짐하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묻게 되었다. 내가 과학에 이토록 몰두한 것이 정말 그 아이들을 위한 길이었을까. 아니면 내 욕망을 포장한 명분이었을까.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나는 자주 곁에 있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나보다 따뜻하고, 나보다 부드럽기를 바랐다. 과학의 이름으로 내가 포기했던 것들을 아이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내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논문도, 상도 아니었다. 바로 이렌과 에브, 두 아이였다. 나를 사람으로 지켜준, 내 삶의 이유.
아이를 키우며 깨달았다.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하나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내가 놓친 시간만큼 그들의 눈빛을 더 오래 바라보려 노력했다. 과학보다 인간이 먼저라는 깨달음은 결국 내 아이들이 가르쳐준 것이다.
4. 커튼콜, 내 마지막 고백
피에르는 나의 동반자였다. 과학자로서도, 인생의 동반자로서도 그는 내 모든 순간에 함께 있었다. 그의 죽음은 내 심장을 도려내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단에 설 수 없던 시대, 나는 소르본 대학 강의실에 섰고, 수많은 조롱과 편견을 온몸으로 견뎌냈다. 실험실의 차가운 바닥 위에서 나를 버티게 한 것은, 누군가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 누군가에 나 자신도 포함된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이 무대 위에서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 장면을 마주하고 있다. 커튼콜이 다가오고, 관객들은 박수를 보낸다. 찬사와 비난이 모두 교차하는 이 자리에 서서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완벽한 과학자가 아니었고, 이상적인 어머니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사람으로 살고자 했다. 나의 과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을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힘이 되었다면,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마리 퀴리였다. 세상의 빛을 좇았고, 삶의 따뜻함을 지키려 했던 한 사람이었다.
이제 무대에서 내려가는 순간이 오고 있다. 조명이 꺼지더라도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이 삶을, 이 무대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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