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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뮤지컬 〈리지〉, 억압의 시대에 울려 퍼진 도끼 소리

뮤지컬 리지 포스터 이미지

그 집엔 숨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리지 보든이다. 어릴 때부터 집이라는 울타리는 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나는 점점 무너져갔다. 아버지는 단단하고 무거운 존재였다. 그의 눈빛은 냉정했고, 말은 칼처럼 짧았다. 계모는 나를 피하고, 무시하고, 침묵으로 나를 죽였다. 방 안에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부터 숨을 죽였다. 말하지 않기, 웃지 않기, 눈을 맞추지 않기. 그런 것들이 살아남는 법이라고 믿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정해진 일과. 식사 때는 무릎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시선은 접시 아래에만. 내가 무엇을 원하든 그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이름조차도 허락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 집은 조용했다. 지나치게 조용해서 오히려 숨 막혔다. 숨소리 하나에도 눈치를 봐야 했고, 발걸음 소리에도 벌을 받았다.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가져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를 사람이라 부르지 않았다

브리짓은 그 집에서 함께 일하던 가정부였지만, 나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녀는 늘 피곤해 보였고, 감정을 감춘 채 움직였다. 그저 오늘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우리는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고통을 알고 있었고, 그건 말보다 깊은 연대였다. 그녀도 나처럼 매일 참고 버티고 있었다.

그 집에서 내가 기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온기는 앨리스였다. 그녀는 유일하게 나에게 웃음을 주었고, 내가 사람으로 느껴지게 해줬다. 앨리스의 목소리는 다정했고, 손길은 따뜻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내가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녀는 내 상처를 꿰뚫어보지 않았고, 그냥 옆에 있어주었다. 나는 그 감정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원하게 되었고, 그 감정이 내 안을 데우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걸 그녀를 통해서 실감했다. 하지만 그 온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허락받지 못한 사이였다.

내가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마저도 세상은 가만두지 않았다. 앨리스는 조용히 물러났고, 나를 마주보지 않았다. 나를 이해했지만, 함께할 수는 없다고 말하듯. 나는 버림받았다고 느꼈고, 동시에 내 안의 무언가가 꺼져버렸다.

그날, 아버지의 발소리가 계단을 내려왔다. 계모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나는 부엌 쪽으로 걸어갔고, 창고 문을 열었다. 도끼는 평소와 다름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것을 들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내 손에 딱 맞았다. 그날은 평소와 같지 않았다. 나는 아주 천천히 움직였고, 아주 조용히 생각했다.

그날 나는 도끼를 들었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악마라고 했고, 누군가는 피해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나는 어떤 말도 듣지 않았다. 내가 왜 그랬는지 묻는다면, 나는 답할 수 없었다. 그건 복잡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오랜 침묵이 만든 소리 없는 폭발이었다.

재판정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눈물로 용서를 구하길 바랐고, 후회하는 표정으로 죄를 인정하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나를 재단했다. 나의 표정, 말투, 눈빛, 심지어는 옷차림까지도. 여자가 저렇게 담담하다니, 여자가 저렇게 잔인하다니. 하지만 왜 아무도 묻지 않는가. 왜 여자는 참아야만 하느냐고. 왜 우리는 끝까지 기다리다 망가져야 하느냐고.

브리짓은 내게 말했다. “너는 틀린 게 아니야.” 그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그녀는 몰랐을 것이다. 언니 엠마는 끝내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녀는 무서워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녀도 나처럼 그 집의 또 다른 피해자였다.

그리고, 앨리스. 나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녀가 도망친 건 나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도 상처를 안고 있었고, 나를 품기에는 그 마음이 너무 작았던 것이다. 나는 그저 그녀가 어디선가 평온하길 바랄 뿐이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살인 기록이 아니다. 이건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한 여자의 고백이고, 세상이 요구한 ‘착한 피해자’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나는 리지. 그 어떤 이름보다, 내가 나였던 순간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