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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포스터 이미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창조된 존재는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1. 위대한 생명창조의 순간 – 신이 되고 싶었던 인간

처음 이 넘버를 들었을 때 나는 이건 단순한 과학자의 ‘열정’이라기보단, 세상의 모든 규칙을 무시하고 신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광기에 가깝다고 느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죽은 생명을 살리는 실험을 한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본인도 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이걸 내가 해냈다는 사실” 자체다.

“내가 세상의 질서를 거스르고,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다면 그건 인간을 넘는, 창조자의 반열에 서는 거다.”

실제로 이 장면에서 유준상 배우가 부른 ‘위대한 생명창조의 순간’은 광기와 집착, 확신과 오만이 동시에 뒤섞인 에너지 덩어리 같았다. 손짓 하나, 눈빛 하나에도 그가 지금 '실험'을 하는 게 아니라,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는 확신이 느껴진다.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멋지다고 느끼는 순간은 누군가를 위하거나,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남들이 절대 못한 걸 내가 해냈을 때” 아닐까?

그게 비인간적이어도 상관없고, 누가 비난해도 “그건 내가 설명할 수 있어”라는 그 말. 진짜 무서운 건 그 대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는 거다.

2. 너의 꿈 속에서 – 괴물 안에 갇힌 한 사람

살아난 앙리. 하지만 더 이상 그는 ‘사람’이 아니다. 이름도 없고, 얼굴도 잃었고, 세상은 그를 괴물이라 부른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대단한 이유 중 하나는 이 괴물을 ‘괴물’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앙리는 괴물이 되었지만, 그 안엔 여전히 기억과 감정이 있고,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는 울분과 외로움이 있다.

“너의 꿈 속에서, 난 살고 있었지...”

박은태 배우가 부른 ‘너의 꿈 속에서’는 한 줄 한 줄이 고통이자 기도 같았다. 그는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모르고, 누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지만, 살아야 했다.

무대 위 조명이 어두워지고, 그가 조용히 노래를 시작할 때 객석도 숨을 죽인다. 그건 단순히 ‘불쌍한 괴물의 노래’가 아니라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존재의 절규다.

그리고 나도 그 순간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의 선택이나 말 한마디로 인해 이상하게 만들어졌던 적 있지 않았나?” 사람들은 결과만 보고 말한다. 그가 괴물이 되었으니까 괴물이라고. 그가 소리쳤으니까 무섭다고. 하지만 그 이전에, 그가 얼마나 외로웠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3. 괴물 – 존재를 부정당한 자의 마지막 절규

그리고 그 다음, 무대 위에 진짜 폭발하는 감정이 올라오는 넘버가 등장한다. ‘괴물’

이 넘버를 처음 들었을 땐 그야말로 소름이 쫙 돋았다. 박은태 배우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시작하지만, 점점 감정이 고조되면서 “나는 괴물이잖아!!” 하고 외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극장에서 조명이 번쩍 터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누구도 날 이해하지 않아! 그 누구도 날 원하지 않아!”

여기엔 원망도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건 슬픔과 자포자기다. 나는 원래 괴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친구였고, 동료였고,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이 곡의 감정에 다 녹아 있다.

괴물이라는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괴물이 아니었다. 그를 괴물로 만든 건 외부의 시선이었고, 그 시선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상처였다.

그래서 이 넘버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그건 이 세상이 만든 괴물의 자각이고, 마지막으로 부르는, 살아 있는 존재의 외침이다.

4. 창조한 자와 창조된 자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건 “빅터와 앙리는 결국 같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었다.

한 명은 신이 되고 싶어서 사람을 만들었고, 한 명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괴물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왜 나를 그렇게 만들었냐’는 말도, ‘왜 널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었는지’라는 말도 끝끝내 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때론 창조자처럼 살고, 때론 괴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은 자꾸 판단한다. 넌 왜 그렇게 생겼냐고, 넌 왜 그렇게 반응하냐고. 하지만 그 사람의 과거를, 그 안의 외로움을, 과연 누가 다 알고 있을까?

이 작품은 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관객이 스스로 답하게 만든다.

마무리하며

〈프랑켄슈타인〉은 무대도 멋있고, 배우들의 노래도 강렬하고, 드라마도 압도적이다. 하지만 진짜 기억에 남는 건 한 존재의 외침과 침묵 사이의 거리였다.

박은태와 유준상. 두 배우가 무대 위에서 보여준 건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그건 인간이라는 단어에 담긴 책임과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괴물성’을 정확히 찔러주는 울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무대를 보고 난 후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도 그 사람 안엔, 그만의 ‘너의 꿈 속’이 있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