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토니의 시선으로 본 <베토벤: Secret>
– 박은태, 박효신, 카이. 그리고 내가 사랑한 세 명의 루드비히
이 작품은 ‘베토벤’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묵직하다.
하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되고 루드비히가 무대에 등장하면,
그 순간부터는 음악가의 전기를 본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한 사람의 삶, 한 사람의 감정,
그리고 그 사람을 바라보는 또 한 사람의 시선에 집중하게 된다.
나는 어느새 안토니였다.
그리고 그의 눈으로 세 명의 루드비히를 바라보았다.
🎩 박은태 – 말하지 않지만 전부 느껴지는 사람
박은태 배우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절대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표현을 하지 않으니까 감정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그 반대였다.
오히려 숨기는 듯한 표정에서
더 깊은 슬픔이 묻어 나왔다.
피아노 앞에서 고개를 살짝 떨구고,
눈은 객석 어딘가를 향해 있는 장면에서
"이 사람은 지금도 어디론가 도망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토니로서, 그를 사랑한다는 건…
함께 있으면서도 계속 어딘가 멀어지는 사람을
붙잡고 싶은 마음과 같았을 것 같다.
근데 그게… 계속 안 되는 거지.
가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는 항상 혼자였다.
🌌 박효신 – 감정을 폭발시키는 사람, 숨조차 무겁다
박효신 배우의 루드비히는 정말 강렬했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 밀어낸다.
첫 넘버부터 이미 숨이 턱 막혔고,
‘비밀 편지’ 장면은 지금도 정확히 기억이 난다.
그 음성이… 정말 "들었다"기보단
"맞았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목소리에 웅크림이 있고,
단어 하나하나를 꺼내는 데도 힘이 들어가 있다.
그게 이 역할과 너무 잘 맞았다.
숨소리까지 캐릭터였다.
이런 루드비히를 옆에서 지켜보는 안토니는
사랑이 아니라 기도에 가까운 감정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안토니가 무언가를 계속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연인이든, 친구든, 인간적인 연결이든
무언가 무너지고 있다는 슬픔이 있었다.
🌙 카이 –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약해 보였던 루드비히
카이 배우는 이 역할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했다.
무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오히려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말할 때 살짝 망설이고,
눈을 맞출 때도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베토벤이라는 인물이 가진 고독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특히 안토니와 대화할 때,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그건 감정의 떨림이 아니라,
확신이 없는 사람의 망설임이었고,
그래서 더 짠했다.
이런 루드비히를 바라보는 안토니는
아마도 그를 사랑하기보다는
지켜주고 싶었을 것 같다.
도움이 되지 못해도,
그 옆에 있어주고 싶었을 것 같다.
그게 사랑이었을 수도 있다.
🌀 세 명의 루드비히를 바라본 안토니의 마음
생각해보면… 안토니가 느낀 감정은
세 사람에게서 전혀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 박은태의 루드비히는… 함께 있어도 멀게 느껴지는 사람.
그래서 더 애틋하다. 손 닿을 듯하지만, 언제나 어딘가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사람. - 박효신의 루드비히는… 너무 뜨겁고 무거운 사람.
감정의 밀도가 너무 강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그런 사람. - 카이의 루드비히는… 가장 가까웠고, 가장 약해 보였다.
그래서 그를 사랑한다는 건 내가 먼저 손 내밀어야 하는 관계였을 거다.
이 세 사람을 바라본 안토니는
그때그때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고,
다른 방식으로 떠나야 했을지도 모른다.
🎬 공연은 끝났지만, 나는 아직 그 안에 있다
공연이 끝난 지 꽤 지났는데,
이상하게 아직도 무대 위 장면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특히 마지막 장면.
루드비히가 말없이 무대를 등지고 나갈 때,
나는 그걸 ‘마지막 인사’처럼 받아들였다.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라는 느낌.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안토니였다.
내가 그를 보내주는 사람이었다.
뮤지컬 〈베토벤〉은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걸 이렇게 다르게 표현한 세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는 건
관객으로서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정확히 누가 더 좋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답을 못하겠다.
그냥… 세 명 모두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았다.
아마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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