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텀>. 단어만 들었을 땐 거창하게 느껴졌지만, 실제 무대를 본 순간… 그건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다. 특히 박효신 배우가 팬텀을 연기하는 그 장면들. 나는 지금도 그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냥 노래가 아니라, ‘감정의 파편’을 목소리에 실어 던지는 느낌. 그의 팬텀은 말보다 노래가 먼저였고, 노래보다 감정이 더 앞섰다. 소리 하나로 외로움을 표현하고, 진심을 건넬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내 귀로 들었지만, 가슴으로 울었다. 그리고 무대 위 두 인물의 1인칭 속으로 빨려들었다.
팬텀의 시선 – “나는 말보다 침묵이 익숙했고, 사랑보다 거리두기가 편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말하지 않았다. 내 얼굴을 본 사람들은 늘 놀랐고, 그 표정이 싫어서 눈을 피했다. 말이라는 건, 내가 뱉는 순간 세상에 닿아야 하는데… 나는 세상과 닿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그래서 침묵을 택했다. 침묵은 나를 보호해줬다. 아무도 다가오지 않게 해줬다.
그러다, 그 아이가 나타났다. 크리스틴. 무대 뒤편, 그림자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난 이상하게도 눈을 감았다. 그 소리는… 참 맑았다. 어릴 적 내가 듣고 싶었던 위로 같은 거였다.
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목소리만으로. 가면을 쓰고, 어둠 속에서 그녀를 가르쳤다. 그 애는 내 목소리를 믿었다. ‘음악의 천사’라고 불렀다. 그 말이 참… 따뜻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그 애에게 나를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애는 빛이었고, 나는 어둠이었다. 감히 섞이면 안 되는 세계였다.
그런데 결국, 내 얼굴이 들켰다. 그 순간, 나는 멈췄다. 말도 못 하고, 손도 못 내밀었다. 그 애의 눈엔 놀람이 있었고… 두려움이 있었다. 그 두려움은 내 것이었다. 난 어릴 때부터 그런 눈을 보며 살아왔기에,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 애가 도망치는 걸, 나는 붙잡지 않았다. 붙잡을 용기도, 이유도 없었다. 그 애는 내게서 노래를 배웠지만, 나는 그 애에게 얼굴을 보여준 대가로 또 다시 혼자가 됐다. 그래도… 그녀의 노래 안엔 아직 내 흔적이 남아 있다는 걸, 난 안다.
크리스틴의 시선 – “나는 세상이 늘 따뜻하다고 믿었는데… 그 눈을 보고 처음으로 멈췄어요”
어릴 때부터 나는 밝은 아이였어요.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다들 저를 예뻐해줬어요. 그래서 세상은 따뜻하다고, 사람은 다 괜찮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팬텀… 그 사람은 달랐어요.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마음을 울렸어요. 어디선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났지만, 무섭지 않았어요. 오히려 안심됐어요. 그리고 그 사람 덕분에 저는 무대에 설 수 있었고, 제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 그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되었어요. 정말, 너무 놀랐어요. 그의 눈엔 수많은 계절이 담겨 있었어요. 혼자서 세상을 살아온 눈. 슬픔을 다 쏟아내고, 남은 것마저 감춘 눈. 그리고 그 눈은… 저를 보고 있었어요.
전 도망쳤어요. 그 눈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어요. 제 안의 ‘따뜻한 세상’이 깨지는 느낌이었거든요. 그 순간, 내가 어른이 아니란 걸 알았어요. 아직은 누군가의 외로움까지 안아줄 힘이 없다는 걸요.
하지만… 그 사람은 저를 붙잡지 않았어요. 그게 더 아팠어요. 그 사람이 날 사랑했단 걸, 도망치고 나서야 알았어요. 그리고 그 사랑은, 결코 괴물의 것이 아니었어요.
관객의 시선 – “박효신의 목소리는 그저 노래가 아니라, 울음이었고 사랑이었어요”
솔직히 처음엔 팬텀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인물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특히 박효신 배우가 등장하고 첫 노래를 부를 때, 나는… 그냥 멍해졌다. 그건 진짜 노래가 아니었다. 감정 그 자체였다.
고음도 아니고, 기교도 아니었다. “이건 울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가 울고 있었다. 노래로 울고 있었다. 그건 듣는 내가 고통스러울 만큼 진심이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 크리스틴을 향한 마지막 노래. 말이 아니라, 노래로 이별하고, 노래로 놓아주는 그 장면에서 나는 정말 울었다. 어떤 대사도 없는데, 그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모든 게 설명됐다. 팬텀이 말하는 방식은 결국, ‘노래’였구나.
공연이 끝나고도,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단순히 ‘노래를 잘한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울림이었다. 그건 팬텀이 가진 외로움, 사랑, 자기부정, 그리고 마지막 용기까지 모두 ‘소리’에 담아낸 한 사람의 인생이었다.
진짜 사랑은, 침묵 속에서 완성된다
<팬텀>은 괴물과 천사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세상이 만든 벽 사이에 갇힌 두 사람의 이야기다. 서로를 이해했지만, 결국은 스쳐지나가야 했던 마음. 그것을 놓아주는 순간에서 진짜 사랑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결을 박효신 배우는 노래 하나로 표현해냈다. 그건 연기이기도 했고, 고백이기도 했고, 울음이기도 했다. 이 공연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심장이 움직이는 순간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누군가의 사랑을 ‘소리’로 만나고 싶다면 — 뮤지컬 <팬텀>, 박효신의 팬텀은 당신을 조용히 무너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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