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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뮤지컬 헤드윅 “그날 나는 다시 태어났다”

2013년 삼성역 인근 KT&G 상상아트홀, 그날 나는 다시 태어났다. 그날 그냥 나는 헤드윅이 되었다. 무대에 서기 전부터 떨리는 심장이 말하고 있었다. 이번 공연은 단지 또 하나의 쇼가 아니라, 내 안의 상처를 찢고, 꺼내어, 모두에게 보여주는 고백이 될 거라고.

뮤지컬 헤드윅 포스터 이미지

뮤지컬 헤드윅  – 떨리는 심장의 시작

조명이 켜지기 전에 나는 엄청 기대를 했다. 밴드가 무대에서 튜닝을 하고 뮤지컬이란 느낌 보다는 콘서트 시작 전에 분위기, 객석또한 평소 뮤지컬과는 다른 분위기에 술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크게 뛰고있는 내 심장소리에 집중할뿐.

그렇게 큰 무대는 아니었지만 내가 느끼는 무대는 얿었다, 하지만 외로웠다. 삼성역 아래 그 극장에서, 나는 헤드윅이라는 이름으로 무대 위에 섰다. 그 이름은 내 이름이자, 나의 모든 조각이었다.

외침 속의 고백 – "나를 찢어줘"라는 말의 진심

첫 노래는 ‘나를 찢어줘’였다. 밴드가 울리고 조명이 터졌을 때, 나는 웃고 있었지만 내 속은 울고 있었다. 그건 시작을 알리는 구호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나를 찢어줘.” 그래, 찢어야만 했으니까. 찢고, 열고, 보여줘야만 했으니까. 그게 내가 이 무대에 선 이유였으니까.

가발을 쓰고 웃는 나 – 가면 뒤의 외로움

나는 관객을 바라봤다. 그들의 반응은 조심스러웠고, 나는 그 조심스러움이 무서웠다. 그래서 외쳤다. “오늘은 콘서트야! 조용한 사람, 일어나요!”

그 말은 그들에게 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헤드윅, 넌 오늘도 살고 있니?” “네가 웃는 건 진심이니?”

‘가발을 써요’는 웃음과 환호 속에서 불렸지만, 그 안엔 외로움이 깊게 숨겨져 있었다. 나는 가발로 나를 꾸몄고, 웃음으로 나를 가렸다. 그래야 덜 아팠으니까.

사랑의 기원, 그리고 나의 조각들

‘사랑의 기원’을 부르기 전, 나는 숨을 골랐다. 그 곡은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용했다. 하지만 바로 그 조용함이 나를 부수었다.

내가 찾던 사랑은 완전하지 않았다. 그 사랑은 나를 반으로 잘랐고, 반쪽짜리 존재로 만들었다.

사악한 작은 마을 – 고통의 독백

‘사악한 작은 마을’. 그 노래를 부를땐 나는 나만 아는 내 이야기, 내가 숨 쉴 수 없이 힘들고 벗어나고 싶은곳을 생각했다.

작은 마을은 사람들을 규정했고, 나를 틀에 가두었다. 나는 규칙을 깨고 싶었고, 그래서 떠났다. 하지만 떠난 곳에서도 나는 완전해지지 못했다. 늘 어딘가 부족했고, 누군가 되지 못한 채 남겨졌다.

자정의 라디오 – 완전하지 않아도, 존재한다는 것

공연의 마지막, ‘자정의 라디오’. 그 노래를 부르며 나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완전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여기에 있어.”

관객들이 조용히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 시선을 느꼈다. 그 시선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조금은 용서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남았다 – 무대 위에, 고백처럼

조명이 꺼지고 박수가 울렸다. 나는 그 박수가 반가우면서도 슬펐다. 왜냐하면, 공연은 끝났지만 고백은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헤드윅〉은 나에게 ‘공연’이 아니었다. 그건 고백이었다. 그리고 그 고백을 들어준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살게 했다.

무대에서 내려왔지만, 나는 여전히 헤드윅이었다. 조각난 나를 안고, 부서진 채 웃으며 나는 오늘도 이 고백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