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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드라마 《조명가게》는 솔직히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밖에 없다. 초반엔 지루하고, 등장인물은 너무 많고, 이야기 흐름도 친절하진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 보고 나면 가슴 한구석에 잔상처럼 남는다. 이 글은 《조명가게》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마음속에 머문 감정들을 정리한 리뷰다. 구조나 장르보다, 느낌에 집중해서 써본다.
등장인물 처음엔 너무 많았다 – 사람도, 이야기도
처음엔 진짜 정신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누구 하나 붙잡고 감정을 따라가려 하면 새로운 캐릭터가 튀어나온다. 심지어 이름도 잘 안 외워진다. 그래서 1~4화까지는 좀 버티는 기분으로 봤다. 재밌다기보단, 이게 언젠가 풀릴 거란 믿음으로.
그런데 이상하게도, 5화부터 뭔가가 조금씩 걸렸다. 감정선이 슬슬 눈에 보이고, 처음에 지나쳤던 장면들이 다시 떠오른다. "아, 그래서 그 사람이 그랬던 거구나" 싶은 순간들이 하나둘씩 나온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짜 몰입하게 됐다.
특히 정원영(김희원)은 진짜 묘한 인물이다. 처음엔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조용한데, 보면 볼수록 그 사람의 말투나 표정, 타이밍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그가 말없이 듣고만 있는 장면이 그렇게 인상적일 줄 몰랐다. 이 드라마가 의도적으로 감정을 안 내보이는 건데, 그래서 더 사람 같기도 했다.
줄거리 - 이야기보단 ‘느낌’이 먼저 오는 전개
솔직히 말하면 줄거리는 잘 설명 못 하겠다. 크게 보면 사고, 죽음, 조명가게라는 공간. 그런데 이걸 직선적으로 풀지 않는다. 이야기를 쌓고, 떡밥을 던졌다가 한참 후에 회수하고, 그 사이에 그냥 ‘감정’이 먼저 온다.
그게 이 드라마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친절한 전개를 기대하면 아예 못 따라간다. 하지만 감정의 흐름에 집중하면, 갑자기 한 장면에서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 온다.
나한텐 그게 이지영(박보영)이 조명가게 안에서 무언가를 ‘본’ 순간이었다. 대사도 별로 없었는데, 그 장면이 어쩐지 너무 먹먹하게 남았다. 스토리는 기억 안 나도, 그 장면은 지금도 떠오른다. 이 드라마는 그런 식이다.
또 하나는 조명의 사용. 이 드라마의 거의 모든 장면은 어둡다. 조명가게라는 장소 자체가 유일한 빛인데, 그 빛이 따뜻한 게 아니라 어딘가 찬 느낌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설정도, 분위기도 다 만들어진 공간인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은 되게 현실적이었다.
감상 포인트 - 이해보다 공감이 먼저 오는 감정 드라마
《조명가게》는 전형적인 미스터리물처럼 보이지만, 솔직히 감정극에 가깝다. 누가 죽었고, 왜 왔고, 이게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이해하려고 보면 계속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 인물들이 어떤 감정을 안고 있는지를 보기 시작하면, 훨씬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의 밀도'가 굉장히 높아진다. 이정은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냥 숨이 멎는다. 말도 별로 없는데, 눈빛 하나로 이미 다 얘기하고 있었다. 그 장면 때문에라도 이 드라마를 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그리고 이런 말 하면 웃길 수도 있는데, 보다가 멈췄다. 그냥 화면 꺼놓고 몇 분 멍하니 있었던 장면이 있다. 누군가 자기 죄책감을 말도 없이 끌어안고 있는 순간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아, 나도 누군가한테 그랬었지…” 하고 생각해버린 거다.
이 드라마가 대사나 설정이 아니라, 자기 감정을 자꾸 꺼내보게 만든다는 게 참 대단하다. 설명이 없는데도, 자꾸 마음이 묘하게 흔들린다.
《조명가게》는 다 보고 나서 “좋았다”고 말하긴 어려운 드라마다. 그런데 이상하게, 며칠이 지나도 계속 생각난다. 말보다 표정, 이야기보다 감정, 줄거리보다 분위기가 오래 남는 작품.
요즘 너무 많은 드라마가 빠르게 감정을 소비하게 만든다. 근데 이건 다르다. 끝나고 나서부터 시작되는 느낌이다. 보는 게 아니라, 겪는 드라마.
조용히 누군가의 기억을 따라가고 싶은 날, 혹은 꺼내기 싫은 감정을 꺼내봐야 할 것 같은 날, 그럴 때 조명가게를 다시 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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