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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엘리자벳〉 – 죽음이 사랑한 이름 〈엘리자벳〉 – 죽음이 사랑한 이름― Der Tod의 시선으로나는 죽음이다.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름.그러나 그 누구보다 오래 살아, 모든 인간의 시작과 끝을 지켜보며 숨결이 멎는 순간을 마주하는, 유일하게 외로운 존재.처음엔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누가 태어나든, 누가 죽든, 세상은 흘러갔고 나는 그저 정해진 질서 속에서 그들을 데려갔다.기억조차 남기지 않았다.그것이 내 존재의 방식이었다.그런데 너를 만났다.그 순간, 나의 영원이 뒤틀렸다.너는 살아 있었다.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뜨겁고 격렬하게.그 살아 있음의 찬란함 앞에서, 나는 죽음이었기에 도무지 어찌할 수 없었다.나는 그저 바라봤다.너를 지켜봤고, 너를 기다렸고, 너에게 닿기 위해 내 존재를 넘어서려 했다.너는 나를 거부했고, 나는 그 거절을 .. 더보기
뮤지컬 살리에스 - 나를 무너뜨린 너를 사랑했다 [1] 살리에르 – 그는 몰랐고,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나는 그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천재의 아우라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언행은 무례했고, 웃음은 가벼웠으며, 모든 걸 장난처럼 넘기던 남자.하지만 그가 건반 위에 손을 얹는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그건 내가 평생에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선율이었다.아무런 힘도 주지 않았고, 아무런 가식도 없었다.그저 흐르는 물처럼, 숨결처럼 자연스러웠다.나는 당황했고, 그를 질투했고, 그날 밤 악보를 찢어버렸다.나는 기도하듯 작곡해왔다.음표 하나에 신의 숨결을 담아내려 애썼다.그러나 그의 음악은... 그 무엇도 담지 않은 듯 완벽했다.신은 왜 나를 택하지 않았는가.왜 나는 한 번도 그런 멜로디를 떠올리지 못했는가.나는 점점 나를 의심하게 됐다.그는 나를 존중했을지도.. 더보기
뮤지컬 데스노트 – 사신은 알고 있다, 이 게임의 끝을 인간은 언제나 심판을 꿈꾼다나는 류크, 사신계에선 지겹도록 오래 산 존재다.수천, 수만의 인간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죽어가는 걸 보며, 이젠 죽음조차 지루하게 느껴지던 시기였다.그래서 그냥, 심심풀이 삼아 데스노트를 하나 떨어뜨렸다.정확히 말하면, 호기심이었다.이 하찮은 인간 세계에 노트를 하나 던져보면, 과연 뭘 어쩌겠나 싶어서.그리고 그는 나타났다. 야가미 라이토.처음엔 그저 똑똑하고 잘생긴 고등학생쯤으로 보였다.그런데 그의 눈은 달랐다.그 안엔 세상에 대한 확신, 아니면 망상이 자리하고 있었다."이 썩은 세상을 내가 바로잡겠다."그가 처음 그 말을 꺼냈을 때, 나는 속으로 웃었다.누구나 그렇게 말은 하지.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살지 못해.그런데 이 녀석은… 곧장 사람을 죽였다. 아무 망설임도 없.. 더보기
뮤지컬〈드라큘라〉 – 그 밤이 지나고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어쩌면, 모든 건 그 밤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사람들이 내게 물었다.“그 후로는 괜찮으셨어요?”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괜찮다고, 이제는 다 지나갔다고.아이를 안고 조나단과 함께 걷는 이 평온한 일상이 나를 감싸고 있긴 하니까.그런데,그건 절반쯤만 진실이다.조용한 밤이면 그날이 떠오른다.피 냄새와 바람 소리, 그리고 그의 목소리.그가 내 이름을 부르던 순간,나는 지금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잊을 뻔했다.그와 처음 마주쳤던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그건 두려움이나 충격보다 훨씬 더 강한 감정이었다.뭔가 오래전부터 나를 지켜본 사람처럼,낯설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눈빛이었다.그가 입을 열자마자 내 이름을 불렀다.“미나.”그 한마디가 모든 걸 바꿨다.이야기에서만 존재하던 존재가 현실이 되었고,그 현.. 더보기
뮤지컬 〈베르테르〉, 사랑이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 뮤지컬 〈베르테르〉, 사랑이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1. 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그날, 나는 단지 시 한 편을 완성하고 싶어서, 혹은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찾고 싶어서 그 마을에 갔던 거였어. 그런데 그곳에 그녀가 있었지. 롯데. 이름 하나만으로도 온 세상이 조용해지는 듯한 여자. 그녀는 아이들과 웃고 있었고, 그 웃음은 내가 알던 세상의 어떤 음악보다 따뜻했어.나는 그 순간, 이미 빠져버린 거야. 어쩌면 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갑작스러웠고, 또 너무 순수했지. 그저 ‘좋다’는 감정으로 시작된 마음은 곧 ‘그녀 없이는 숨 쉴 수 없다’는 절실함으로 커져갔어. 그건 내가 원해서 선택한 감정이 아니었어. 마치 비가 내리면 땅이 젖듯, 그녀가 내게 미소 지었기에 나는 사랑에 빠졌던 거야.2. 그녀는.. 더보기
〈레베카〉 속 나의 시선, 댄버스 부인을 바라보며 1. 이름 없는 나, 그녀의 그림자 앞에서그의 손을 잡고 처음 맨덜리에 들어섰을 때, 나는 내 이름을 잃었다. 누구도 나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고, 나조차 나를 부르지 못했다. 벽지에서 나는 오래된 장미 향, 카펫을 밟을 때마다 울리는 먼지 섞인 숨결, 그리고 어딘가 날카롭고도 차가운 시선. 그 모든 것이 나를 조용히, 그러나 천천히 짓눌렀다.그 중심엔 그녀가 있었다. 댄버스 부인. 그 눈빛은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하고 있었고, 그 목소리는 나에게 닿지 않았다. 그녀는 맨덜리의 주인이 아니었지만, 분명 주인보다 더 깊이 이 집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는 레베카를 숭배했고, 나는 그 숭배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나는 누구지?’ ‘왜 나는 여기에 있는 거지?’ 끊임없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울렸고, 대답 없는 .. 더보기
〈명성황후〉, 무대 위에서 다시 숨 쉰 황후의 시간 무대 위, 황후의 숨결이 되다– 배우 신영숙, 2025년 세종문화회관 〈명성황후〉를 마치고1. 다시 시작된 이름, ‘명성황후’2025년 1월, 다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섰다. 30주년 기념 시즌의 첫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 작품은 내게 처음부터 특별했다. 1999년, 조연 ‘손탁’ 역으로 데뷔했던 무대, 그 무대 위에서 다시 ‘명성황후’로 서 있는 지금, 그것은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한 사람의 배우 인생을 돌이켜보는 순간이기도 했다.막이 오르기 전, 늘 그랬듯 무대 뒤 조용한 공간에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오늘도 당신을 살아내겠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단지 배역이 아니었다. 하나의 생명이었고, 하나의 시대로서 존재했다.2. 황후라는 옷을 입는다는 것의상실에서 명성황후의 옷을.. 더보기
뮤지컬 〈영웅〉, 내가 정성화였다면 뮤지컬 〈영웅〉, 내가 정성화였다면무대가 어두워지고, 조명이 천천히 발밑을 비출 때마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내가 정성화였다면, 그 무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역사 속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려 말을 전하는 자리. 대본을 처음 펼쳤을 때부터 무거운 책임감 같은 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그 시대를 몸에 품고 살았을 테니까.하지만 막상 무대에 발을 딛는 순간,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을 것 같다. 긴장된 공기 속에서도 따뜻한 무언가가 있었을 테고, 조명이 뜨겁게 등을 밀어줄 때마다 그는 안중근이라는 사람에게 조금 더 가까워졌을지도. 그 순간만큼은 연기자라기보단,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으로 서 있었겠지.1. 영웅이라는 이름을 입는다는 것‘안중근’이라는 세 글자. 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