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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서초동 이미지

JTBC 드라마 〈서초동〉은 화려한 법정 장면보다, 차갑고 현실적인 ‘로펌’이라는 일터의 감정을 다룬 드라마다. 주인공들은 정의보다 생존, 이상보다 현실에 집중하며, 감정을 절제한 채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 드라마는 법조인이 아니라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조용한 위로와 단단한 현실이 공존하는 이 작품의 서사를 분석해 본다.

로펌이라는 직장, 이상과 현실의 경계

〈서초동〉은 ‘법정 드라마’라는 이름보다 ‘직장 드라마’에 가깝다. 대형 로펌이 배경이고, 주요 인물들은 어쏘 변호사다. 하지만 법정 장면보다 사무실, 회의실, 접견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중심이다. 즉, 승소보다는 과정, 이상보다는 생존을 그린다.

주인공 안주형(이종석)은 9년 차 어쏘로, 경력도 실력도 있지만 독립하지 않는다. 이유는 설명되지 않지만, 그의 침묵 속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조직에 적응해버린 사람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강희지(문가영)는 이제 막 입사한 1년 차 변호사다. 이상을 꿈꾸며 법조계에 들어왔지만, 현실은 그 이상을 꺾어버린다. “이 일 오래 하려면 감정은 줄여야 해요”라는 주형의 말은, 이상을 접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상징한다.

이 드라마의 진짜 법정은 사무실 안이다. ‘누가 맞냐’가 아니라 ‘누가 오래 버티느냐’가 중요하다. 드라마는 그 진실을 드러내되, 과장하지 않고 정직하게 보여준다.

다양한 인물과 직장 내 감정 구조

〈서초동〉의 가장 큰 장점은 중심 인물이 따로 없다는 점이다. 각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직장이라는 공간을 버티며, 입체적인 감정 구조를 만들어낸다.

조창원(강유석)은 겉으로는 늘 밝지만, 실은 조직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 회의에선 웃고, 상사에겐 맞장구치고, 중요한 순간엔 침묵한다. 결국 검사가 되기 위해 조용히 퇴사한다. 인생의 방향을 틀면서도, 드라마는 그 선택을 감정적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배문정(류혜영)은 ‘평범한 직장인’에 가깝다. 항상 피곤해 보이고, 회식은 빨리 떠나고, 아침엔 지각이 잦다. 결혼과 임신을 거쳐 휴직하는 과정도 담담하게 그려진다. 감정의 기복은 없지만, 오히려 현실감이 진하게 묻어난다.

하상기(임성재)는 절제된 캐릭터지만 서사는 풍부하다. 재벌가 자제라는 오해를 받지만, 실상은 8년간 계절학기로 대학을 다니며 생계를 위해 알바까지 한 인물이다. 그는 로펌을 나가 교수의 길을 걷는다. “진짜 가진 건 시간뿐이었다”는 대사는 그의 인생 전체를 요약한다.

이처럼 드라마 속 인물들은 누구 하나 특별하지 않지만, 모두가 진짜 사람 같다. 이들은 소리 지르지 않고, 주목받지도 않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감정은 절제돼 있지만, 서사는 깊다.

청춘 변호사의 감정선과 조용한 위로

〈서초동〉은 로맨스를 다루되 빠르게 진행하지 않는다. 안주형과 강희지 사이엔 과거 인연이 있지만, 감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대사보다 시간, 사건보다 일상이 감정을 만들어간다. 현실의 관계가 그러하듯, 이들도 ‘같이 시간을 보내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가까워진다.

특히 인상적인 장치는 ‘밥모임’이다. 서로 다른 로펌에 있는 다섯 명의 변호사가 점심마다 만나 밥을 먹는다. 때로는 말없이 밥만 먹는 날도 있지만, 그 침묵조차 위로가 된다. 아무것도 묻지 않지만, 서로의 존재만으로 위안을 주는 순간이 이 드라마엔 많다.

드라마의 결말도 조용하다. 누군가는 개업하고, 누군가는 퇴사하고, 누군가는 그대로 일터에 남는다. 갑작스러운 반전도, 극적인 엔딩도 없다. 하지만 그 안엔 분명한 ‘변화’가 있다. 이 변화는 드라마가 이야기하는 ‘직장인의 현실’이기도 하다.

결국, 이 드라마는 로펌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다. 어떤 선택을 했든, 어떤 자리에 있든,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 그들의 삶에 소리 없이 다가간다.

〈서초동〉은 법조인을 다룬 드라마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직장인’이다. 화려한 법정 장면이나 통쾌한 승소가 아닌, 눈치와 현실, 감정과 침묵 사이에 놓인 인물들의 감정이 중심이다.

이 드라마는 말 대신 시선을, 행동 대신 침묵을 사용한다. 그래서 더 조용하지만, 더 진하게 다가온다. 때로는 드라마보다 일기에 가깝고, 때로는 위로보다 현실을 먼저 보여준다.

직장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가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현실 속 직장인의 감정을 담담히 그린 〈서초동〉.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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