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음악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은 나는, 결국 그의 마지막 청중이었다
“나는 그를 믿었다. 정말로 믿었다.”
그는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음악적인 사람이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사람 같았다. 공기의 진동, 걸음의 박자, 심지어 사람이 죽어갈 때의 숨소리마저 그에겐 악상이 되곤 했다.
나는 그를 좋아했다. 단순한 우정이었을까? 모르겠다. 어쩌면 그 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곁에 있다는 것,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나는 내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처음 만난 건 학교 연습실이었다. 비어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아, 그는 아무 말도 없이 건반을 눌렀다. 멜로디도 아니고 리듬도 아니었다. 그냥… 감정의 뼛조각 같은 소리. 그걸 듣고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무섭도록 아름다웠다.
그와 함께 한 첫 무대, 우리는 아무도 없는 빈 강당에서 리허설을 하며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 그는 연주를 끝내고 내게 물었다. “넌 왜 내 음악 듣고 울었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게 우리가 시작한 방식이었다.
“변해간 건 그였을까, 아니면 나였을까”
그의 음악은 점점 달라졌다. 예전에는 따뜻하거나, 날카롭거나, 슬프거나 감정의 얼굴이 분명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알 수 없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아름답지만 불편하고, 서늘한데도 끌리고, 이해하고 싶지만 끝끝내 닿지 않는 음악.
그때 처음으로, 나는 그의 곁이 낯설다고 느꼈다.
어느 날 그는 내게 물었다. “사람이 죽는 순간의 소리를 들은 적 있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질문이 아니라 선언 같았으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에서 끔찍한 사건을 접했다. 그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서, 그의 손끝에서, 그의 다음 작품의 음에서.
그는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시간에 살지 않았다. 나는 그를 붙잡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 음악이 완성되기를 원했다. 그게 너무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침묵은 무책임이 아니라 내가 택한 비겁한 동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중에 혼자 밤마다 그 질문을 했다. 왜 나는 말리지 않았을까. 그때 멈췄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하지만 나도 결국, 그 음악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가 끝내 완성할 그 ‘광염 소나타’가.
그의 광기가 나를 집어삼키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그가 연주를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그게 지금도 가장 비참한 고백이다.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보여준 곡은 내가 알던 그 어떤 음악보다 완벽했다. 모든 감정을 밀어넣은 것 같았고, 모든 죄악을 악보에 묶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울었다. 진짜로, 무대 뒤에서 조용히 울었다. 그가 나를 향해 말했다. “넌 이 곡을 위해 살아온 거야.”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그가 나를 사랑했던 건지도 모른다는 걸. 하지만 그 사랑은 사람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음악을 위한 사랑이었다. 그의 음악에 필요한 존재로서 나는 존재했고, 그의 감정 안에서만 나는 살아 있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쓴 곡의 마지막 마침표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나를 해하려 했을 때, 그의 얼굴은 슬프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그게 제일 끔찍했다.
그와의 마지막 순간,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내가 살아남은 건 누군가의 방해 덕이었고, 아니면 그조차도 그의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끝내 자신을 불태우며 그 악보를 남겼다. 그 한 곡을 위해 사람 셋의 인생이 무너졌고 나 혼자만 살아남았다. 그게 나의 지옥이다.
“이제 그의 음악은 끝났다. 나의 고통도.”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의 곡은 이제 더는 들을 수 없다.
무대는 비어 있고, 그의 악보는 불타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는 연주를 그만뒀다. 어느 순간부터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숨이 막혔다. 그의 그림자가 건반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직도 꿈을 꾼다. 그가 내 곁에 다시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넌 지금도 내 음악 안에 있잖아.”
나는 그를 잊고 싶다. 하지만 잊지 못한다. 그의 숨소리, 음색, 나를 바라보던 눈동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긴 그 지독히 아름다웠던 멜로디.
우리는 친구였다. 그리고 그가 만든 지옥의 동반자였다. 뮤지컬 〈광염 소나타〉는 나에게 물었다. 사랑이라는 말이 예술을 용서할 수 있냐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마주할 용기가 있냐고.
나는 아직도 대답하지 못한다. 그의 음악처럼, 끝나지 않은 질문이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