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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맨 오브 라만차〉, 나는 주인님의 곁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 산초의 이야기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이미지

나의 주인님, 돈키호테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지요. 어리석다고, 미쳤다고, 허황된 망상에 빠진 노인이라고. 하지만 제 눈엔 달랐습니다. 감옥 안, 그 어두운 지하에서조차 눈빛은 살아 있었어요. "나는 라 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다." 그분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두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죠.

누군가는 연극이라 말했고, 누군가는 시간 벌기용이라 생각했지만, 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건 그분의 진심이란 걸요. 처음부터 거창한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냥 그 사람이... 좋았어요. 그 따뜻한 눈빛과, 다정한 말투, 무엇보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믿고 싶은 모습'으로 보려는 그분이 이 세상 누구보다 단단하고 아름다워 보였거든요.

그래서 따랐습니다. 바보 같다고 욕먹어도,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도, 저는 그분 곁에 있고 싶었어요.

그 여정은 언제나 무모했지만

우리 여정은 늘 엉뚱하고, 고단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웠습니다. 풍차를 거인이라 착각해 달려들고, 길바닥에 쓰러져 있던 여인을 귀족 숙녀로 부르며 고개 숙이고. 그 모습은, 분명 우습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알았습니다. 그분은 허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진짜'를 보고 있었던 거예요. 알돈자, 그 여인을 향한 눈빛도 그랬습니다. 창녀로 불리던 그녀에게 "둘시네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녀가 귀하고 순결한 존재라고 믿었죠.

처음엔 욕설과 조롱만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흔들리지 않았어요. 사람이 누구인가는, 그 사람의 과거가 아니라 지금 누가 믿어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분은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알돈자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지요. 거칠게 밀어내던 그녀가, 마지막엔 스스로 "나는 둘시네아입니다"라고 외쳤을 때 저는 그 자리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삼켰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그날 밤, 주인님이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견딜 수 없는 슬픔을 견디고..."

그건 단지 멜로디나 가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삶이었고, 저의 다짐이었어요. 나약한 저에게,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던 제 삶에 이 노래는 하나의 빛이 되었습니다.

주인님은 병들었고, 몸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쓰러뜨렸고, 현실은 그의 믿음을 비웃었죠. 하지만 저는 그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그분에게 말했어요.

"당신은 돈키호테입니다. 라 만차의 기사이며, 저의 주인님입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일어섰습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꿈은 이제 나의 길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분을 기억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바보 같았다고, 무모했다고 말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압니다. 그의 꿈은 세상 누구보다 진실했고, 그가 믿은 세계는 반드시 누군가가 이어가야 한다는 걸.

그리하여 저는 오늘도 걷습니다. 아직 미완의 여정을. 그 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저는 이제 주인님의 시종이 아닙니다. 그분의 친구로서, 동료로서 그 꿈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뭐라 해도, 사람들이 비웃어도, 저는 믿습니다.

주인님, 당신의 이름은 제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라 만차의 기사 돈키호테, 그리고 당신을 끝까지 따랐던 산초 판사. 우리 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인님과 함께한 시간은 제 인생의 가장 큰 기적이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제대로 봐준 적 없었는데, 그분은 저를 친구라 불러주셨죠. 단지 부리는 하인이 아니라, 함께 싸우고 함께 노래하는 사람으로요.

주인님이 떠난 후, 저는 매일 그분을 떠올립니다. 가끔은 풍차를 바라보다 웃음이 나고, 가끔은 그분의 칼을 닦으며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그분이 믿었던 세상은 진짜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세상을 바꾸려 한 게 아니라, 사람 하나하나의 마음을 움직였던 분입니다. 그 믿음의 힘이 어떤 것보다 강하다는 걸 그분은 온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감옥 안에서, 연극이 끝나고 진짜 재판이 시작되었을 때도 그분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주인님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려 했고, 그 연극 속에서 우리 모두는 진짜 돈키호테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줍니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꿈과 믿음, 그걸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죠.

주인님, 당신이 남긴 말들은 제 가슴에 남아 지금도 저를 움직입니다. 사람들은 그 꿈이 헛되었다고 말하지만 저는 압니다. 당신이 이룬 건 단지 싸움이 아니라 희망 그 자체였다는 걸요.

그리고 지금도 저는, 그 별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저의 이름은 산초, 당신의 길을 끝까지 함께 걷는, 가장 충직한 친구입니다.

사람들은 제게 묻습니다. 그토록 무모한 주인을 왜 따라갔냐고요. 저는 그럴 때마다 대답합니다. 그분이 보여준 건, 세상에 가장 필요한 용기였다고요.

누구도 믿지 않고, 누구도 의지하지 않는 시대에 그분은 끝까지 누군가를 믿고, 사랑했고, 꿈을 꿨습니다. 그런 분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제가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주인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제 귀에 남아 오늘도 제 발걸음을 이끌고 있습니다. 저는 잊지 않을 겁니다. 세상이 등을 돌려도, 단 한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당신께 배웠으니까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주인님. 저 산초는 지금도 그 길 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계속 그 별을 향해 걷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