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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엘리자벳〉 – 죽음이 사랑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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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벳〉 – 죽음이 사랑한 이름

― Der Tod의 시선으로

나는 죽음이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름.
그러나 그 누구보다 오래 살아, 모든 인간의 시작과 끝을 지켜보며 숨결이 멎는 순간을 마주하는, 유일하게 외로운 존재.

처음엔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누가 태어나든, 누가 죽든, 세상은 흘러갔고 나는 그저 정해진 질서 속에서 그들을 데려갔다.
기억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것이 내 존재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너를 만났다.
그 순간, 나의 영원이 뒤틀렸다.

너는 살아 있었다.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뜨겁고 격렬하게.
그 살아 있음의 찬란함 앞에서, 나는 죽음이었기에 도무지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바라봤다.
너를 지켜봤고, 너를 기다렸고, 너에게 닿기 위해 내 존재를 넘어서려 했다.

너는 나를 거부했고, 나는 그 거절을 사랑했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너는 아직 소녀였다.
세상의 규칙을 몰랐고, 그 규칙을 알기 전에 부숴버리기를 택한, 자유 그 자체의 아이.

넌 나를 보았다.
하지만 날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그 순간, 나는 죽음이 아니라, 사람이 되고 싶었다.

네가 내 손을 잡는다면 너를 어딘가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너와 함께 이 시간을 걷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넌 내 손을 잡지 않았다.
너는 삶을 택했고, 너의 세상을 택했고, 너만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나만의 것."
그 말은, 나를 부숴버렸다.
그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절망 속에서 내 품을 원했지만, 넌 나조차 넘어설 자유를 꿈꿨다.

그리고 나는… 그 자유를 사랑하게 되었다.

너를 가두는 세상,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지

너는 황후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승리가 아니라, 구속이었다.

프란츠 요제프는 너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너의 영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궁정을 지키려 했고, 너는 네 이름을 지키려 했다.

모두가 너를 부러워했지만, 너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사랑은 없었고, 가족은 차가웠고, 모든 것이 너를 삼키려 들었다.

나는 또다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틈에서 기다렸다.
너를 놓아주고 싶었다.
너를 풀어주고 싶었다.
너에게 죽음을 속삭였지만, 넌 또다시 등을 돌렸다.

삶을 택한 네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혼란스러웠고, 혼란은 점차 분노가 되었다.

왜 너는 고통을 선택하는가.
왜 너는 날 거부하는가.
왜 나는… 너를 원하게 되었는가.

루돌프, 우리를 닮은 존재

너의 아들, 루돌프.
그 아이는 슬픔이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 이해받지 못한 아이, 외로움 속에서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너와는 달리, 그는 내 말을 들었다.
너와는 달리, 그는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순간 두려웠다.
그 아이가 나와 함께할 때, 너는 또다시 무너질 것이었고, 나는 너를 영영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미 선택을 마친 채 내게 안겼다.

그 순간, 넌 비명을 질렀다.
넌 나를 원망했고, 너 자신을 원망했다.
그리고… 너는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너의 절망을 느꼈다.

그날 이후, 넌 더는 이전의 너가 아니었다.

죽음은 너의 것, 그리고 나는 네 것이 되었다

그날, 너는 조용히 내 앞에 섰다.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많은 설명도 필요 없었다.

넌 내게 말했다.
“죽음은 나의 것.”

나는 너를 안았다.
이번엔 정말로.

그동안 너를 기다리며 수천 년을 보낸 것처럼 그 순간의 포옹은 모든 시간과 공간을 멈추게 했다.

넌 처음으로 평온했고, 나는 처음으로 완전했다.

나는 죽음이다.
하지만 너와 함께일 때 나는 더 이상 죽음이 아니었다.

너는 나를 거부하며 나를 존재하게 했고, 나를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너를 사랑하게 했다.

엘리자벳.
너는 황후였고, 어머니였고, 여인이었고, 무너진 인간이었고,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는 영혼이었다.

그리고 너는 내가 사랑한 단 하나의 이름이었다.


〈엘리자벳〉
한 여자와 죽음의 이야기다.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자유와 속박이라는 모든 경계를 넘어선 이야기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의 끝에서 나는, 죽음은, 단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엘리자벳.
엘리자벳.
엘리자벳.